지난 시간에는 항암제의 진화를 이야기했었습니다. 오늘은 암 치료의 또 다른 축, 방사선 치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방사선을 쏘아서 암세포를 없앤다고 편하게 얘기하지만, 그 방식은 지난 수십 년간 놀랄 만큼 진화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강한 X선을 그냥 확 쏴서 종양을 태우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그 주변의 멀쩡한 조직들까지 함께 손상을 입는다는 점이었죠. 탈모, 구토, 피부 궤양 등 전신 부작용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방사선 치료도 항암제처럼, ‘암만 정확하게 맞추고 정상조직은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세기’보다 ‘정확성’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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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치료의 세대별 진화 3D-CRT > IMRT > SBRT
가장 먼저 시작된 방사선 치료는 X선을 단순히 고출력으로 종양 부위에 쏘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X선이 우리 몸을 관통하며, 종양이 있는 자리뿐 아니라 그 앞뒤로 지나가는 모든 조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 암만 잡겠다고 했는데 옆집까지 불태워버린 셈이었습니다. 그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것이 3차원 입체조형 방사선 치료(3D‑CRT)입니다. 이 방식은 CT나 MRI로 종양의 모양을 3차원으로 정밀하게 분석한 후, 다양한 각도에서 방사선을 쏘아 암 조직만 정확하게 감싸도록 설계합니다. 여전히 X선을 사용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과학적인 접근입니다. 흔히 5일씩 주 5회, 4–6주간 진행되며, 폐암·유방암·전립선암·두경부암 등에서 기본 치료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후 발전한 것이 바로 세기조절 방사선치료(IMRT)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IMRT는 2016년 방사선 치료의 24.7% 비중이었으나 2020년 60.4%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치료 효과와 안전성, 급여항목 확대가 그 원인으로 보여집니다. IMRT는 단순히 방향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각 빔의 세기까지 조절합니다. 쉽게 말해, 방사선을 ‘진하게’, ‘연하게’ 구분해서 암세포에는 강하게, 정상조직엔 최소한만 주는 방식이죠. 이 기술은 마치 ‘암 주변을 정밀하게 덧칠하는 붓질’과 같습니다. 특히 뇌종양이나 전립선암처럼 정밀함이 생존율에 직결되는 암종에서 IMRT는 필수처럼 쓰입니다.
정위체부 방사선치료, SBRT는 짧은 시간 동안, 매우 높은 선량을 소수의 횟수로 쏘는 최신 기술입니다. X선을 쓰긴 하지만, 고속카메라처럼 움직임을 추적하며 오직 종양에만 집중해 쏘는 것이 특징입니다. 종양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자동으로 조정됩니다. 대부분 1~5회 만에 치료가 끝나고, 치료 시간도 20분 내외로 짧아 환자 부담도 줄었습니다. 폐암이나 간암 초기, 척추 전이암 같은 경우에 매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국소 제어율이 9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단, 고도의 장비와 운영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형 병원에서만 적용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입자치료 시대 – 브래그 피크가 바꾼 판도
방사선 치료의 진짜 진화는,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처럼 입자를 직접 쏘는 치료에서 완성됩니다. 이들은 모두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는 물리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일반적인 X선은 쏘는 즉시 에너지를 계속 방출하지만, 양성자나 탄소 이온 같은 입자는 몸속을 지나가면서 에너지를 거의 방출하지 않다가, 멈추기 직전에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내뿜습니다.
이게 바로 브래그 피크입니다. 이를 이용하면, 암세포가 위치한 정확한 지점에만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고, 그 앞뒤의 정상 조직은 손상 없이 지나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여러 깊이에 걸쳐 겹치면 “확산 브래그 피크(SOBP)”가 되며, 종양 전체를 골고루 정밀하게 조사할 수 있습니다.
양성자 vs 중입자 – 무엇이 다를까?
양성자는 수소 원자핵(양성자)을, 중입자는 탄소 원자핵을 가속시켜 사용합니다. 둘 다 브래그 피크를 활용하지만, 차이점은 무게와 정밀도에 있습니다.
양성자는 입자가 가볍고 브래그 피크 폭이 넓어, 종양 전체에 고르게 방사선을 퍼뜨리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특히 소아암, 뇌종양, 전립선암처럼 정상 조직 보호가 중요한 경우에 매우 유리하죠. 반면 중입자는 입자가 무겁고 에너지 집중도가 훨씬 높아, 방사선 저항성이 강한 악성 종양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입니다. DNA를 단순히 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뭉텅이로 파괴합니다. 골육종, 점막 흑색종, 췌장암 등에서 효과가 높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고가의 장비와 운용비, 제한된 치료 기관이라는 현실적 한계도 있습니다.
암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방사선 치료
어떤 방사선 치료가 좋은지는 암의 종류와 위치에 따라 다릅니다. 두경부암이나 점막 흑색종처럼 재발이 잦고 방사선 저항성이 있는 암에는 중입자 치료가 생존율을 25% → 44%까지 끌어올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폐암에서는 SBRT가 표준이지만, 중입자 치료도 국소제어율 80% 이상을 보이고 있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소아나 뇌종양에서는 양성자 치료가 뇌 성장, 청력, 인지능력 보존에 탁월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꼽힙니다. 전립선암은 양성자·중입자 치료 모두 5년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높지만, 기존 IMRT도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고민이 필요합니다. 골육종, 연부조직암에서는 중입자가 수술 대안이나 보조치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소제어율 74%, 생존율 72%라는 임상 결과도 있습니다.
결론: 방사선 치료의 미래는 ‘정밀함’에 있다
방사선 치료는 단순히 “쏜다”는 개념을 넘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쏠 것인가’가 핵심이 되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3D-CRT, IMRT, SBRT를 거쳐 이제는 양성자와 중입자 같은 입자치료에 이르기까지, 목표는 분명합니다. 암세포만 정확하게 타격하고, 정상 조직은 최대한 지켜내는 것. 입자치료는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브래그 피크’라는 물리학적 원리를 통해 몸속 특정 위치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치료의 정밀도뿐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물론 고비용과 제한된 인프라 등 현실적 제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방사선 치료도 암을 향한 맹공격에서 ‘정밀한 조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암과의 싸움에서 내 몸을 더욱 배려하고 지키는 방향으로 의학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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